작은 교회도 예배 기획을 해야 한다고 미디어와 예배 섹션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어떤 예배 기획을 해야 하느냐 라고 생각하면 방법론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기획은 가장 기초가 되는 신학적인 관점을 모르면 본질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코너에서는 예배 기획의 기초가 되는 신학적 관점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I. 예배의 정체성을 세우자
예배 기획은 예배의 내용과 컨셉,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큐시트를 만들어 타임 라인대로 진행하는 것은 낮은 수준에서의 예배 기획입니다. 예배 기획을 그렇게 알고 가르치는 곳이 많습니다. 이렇게 예배 기획을 하게 되면, 예배의 본질과 정신이 공유되지 못하고, 예배가 일이 되며, 정작 예배 담당자들이 고갈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배 기획은 우리의 예배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부터 정의를 해야 합니다.

1. 예배의 정체성
1) 우리는누구인가? –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 : 본질적인 변화는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전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는 다른 종교적 제의와는 정체성이 달라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직접 나타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성령과 말씀에 의해 성삼위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 우리 내부로부터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만남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 모든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그의 인생을 새롭게 정의하셨습니다. 인생이 엉망이었던 야곱에게도 이스라엘이라고, 나중에는 여수룬이라고 새롭게 정체성을 명명하셨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정체성을 받은 믿음의 선조들이 보인 반응은 주의 뜻에 순종하는 엎드림과 언약(제사, 예배)으로 드리는 새로운 교제였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정체성이 있어야 우리는 진실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정의하고 삶의 방향과 방식을 재편합니다.
출애굽을 한 히브리 민족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않자 아론을 중신으로 향락의 제전을 하게 됩니다.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목마르고 배고프고 밤낮의 추위와 더위의 고난의 길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겸손해 지기 보다는 불평과 과거 따뜻하고 배불렀던 노예 생활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과거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려도 그들의 방식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도 그들이 좋아하고 이해할 만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정체성이 바르게 세워지지 않으니 그들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똑같습니다. 실제로는 거듭나지 않았지만(새로운 정체성이 없지만) 열심히 예배 드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적인 행위와 자기 충족과 결핍된 자아실현의 장으로서 교회와 예배, 하나님을 인식하고 열심히 예배와 봉사를 합니다.
광야에서 그렇게 번제와 소제, 화목제, 속죄제를 열심히 드린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40년 동안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들과 같지 않은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새로운 세대만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거대하고 화려한 헤롯이 지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2) 우리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 – 하나님 나라의 생태계 인식과 위치(Location)의 정체성 : 예배가 어디에 위치하느냐라고 생각하고 예배를 기획하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예배는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라 굳이 예배의 위치란 것을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예배의 내용과 방향성이 정해집니다. 이 위치는 협의로는 주소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알고 실천할 지역으로 보이지 않게 임하는데, 이는 실천하는 예배자들을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미래 종말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도래할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도 있지만, 예수님의 초림과 부활, 성령님의 강림으로 비 가시적으로 이미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3) 이미지 : 유사 천국의 이미지를 만들게 되면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기 보다는 인간이 좋아하고 욕망하는 것을 종교적인 것으로 구현하려 합니다. 이런 이미지는 마음 속의 욕망을 종교적인 것으로 투사해 종교적인 행위와 활동으로 표현하도록 합니다. 이런 것들은 대게 추상적이고 화려합니다. 예배를 통해 전달해야 할 이미지는 종교적 상징성과 추상성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실천할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격려하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져야 합니다.
4)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Inside) :예배를 통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다양한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특별 예배나 절기 예배는 시각적인 것들을 많이 동원합니다. 교회 플래카드나 배너, 십자가와 장식,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와 영상, 목사와 성가대의 가운, 강대상의 등등… 또 연극이나 스킵 드라마도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보여지는 것이 단지 설교의 내용이니까, 절기 예배라서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로서의 유용함이 있기는 하지만,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점점 과용되다보니 영상이 소비주의 신앙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하게 만들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이게 눈이 즐겁도록 잘 만들어져 제공됩니다.
소비주의에 일조한다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 주 예배에서 특히 설교시간에서는 주로 담임 목사님을 스크린으로 비춥니다. 일년 내내 담임 목사님과 어떤 대화도, 식사도, 차 한잔도, 심방도 받지 않아도 몇 주만 지나면 가상의 친밀감이 생깁니다. 정상적인 관계성, 즉 성도의 교제가 아닌 일방적인 관계성(팬심)이 생깁니다.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성도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곳입니다. 일방적인 관계가 강하다면 건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이 관계성은 상호적이고 계급적이거나 일방적이 아닙니다.
보여지는 것을 예배에 제공하는 것은 이 때문에 매우 조심하고 주의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잘 못 사용하면 일방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여지는 것은 기억과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냅니다. 교회 공동체의 공동의 기억과 커뮤니케이션을 잘 세우도록 하는데 영상이나 이미지가 그래서 중요하고 제대로 고민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 기획에서 보여주는 것은 보이는 것을 넘어 인사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인사이트는 예배의 이미지나 상징, 영상이 예배자에게 정체성, 가치, 방향성을 떠 올리게 잘 만들어 제공될 때 느낄 수 있습니다. 보여주는 것으로 인한 인사이트는 백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 짧은 시간에 예배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환경과 이웃에 대한 정체성, 가지, 방향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물론 이와 같은 인사이트는 보여지는 것 단독으로 될 수는 없고, 전체 예배 기획과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잘 만들어진 보여지는 것은 내부적인 인사이트를 외부적인 인사이트로 연결하는 브리지가 됩니다. 자신의 내적 가치가 외부 방향의 선교적 가치로 자연스럽게 안내하게 됩니다. 내부적인 이미지를 잘 만들면 외부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가 제대로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5)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Outside) : 하나님은 말씀과 예배를 통해 우리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신 것을 넘어, 거듭난 우리를 통해 세상을 하나님과 연결하게 바깥을 향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십니다. 참된 예배를 드린다면 이와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많은 예배는 제도화된 교회 안에서 머무느라 외부와 연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부 지향적이고 외부와는 철처히 단절되어있고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이미지가 내부적으로만 맴돌게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는 전진 기지이기에 외부를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고 연결시키고 나아가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 역사에서 사용된 많은 아이콘들과 성상, 성화, 이미지, 배너, 플래카드, 영상 등은 거의 교회 내부 안에서 효용이 있고, 내부를 결속하는데에만 사용되었습니다.
20세기 말부터 교회의 예배에 움직이는 영상이 도입되었습니다. 모든 문화가 동영상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정적 이미지가 아닌 동적 이미지가 도입된 것은 교회와 예배에서 상당한 가능성을 가져다 줄 수 있었지만, 현재 교회에서는 여전히 동영상을 내부 지향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영상은 우리를 다양한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작가의 관점을 고정된 이미지 보다 더 자세하고 의미있게 전할 수 있습니다.
6) 실용주의 관점이 현대 예배 기획을 망친다. : 교회의 양적 부흥이라는 관점은 교회에 실용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배 예전과 기획은 양적인 부흥을 촉진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왔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참관자로 굳어있던 교인들을 예배의 참여자로 만든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목적은 외면적으로 보면 달성이 이미 되었습니다. 좀 더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게 하였고, 찬양이 적극적으로 예배에서 비중을 높임으로 정적이었던 예배가 동적이고 참여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세대간의 찬양 문화의 차이, 과도한 음량, 많은 재정의 투입, 찬양 리더자의 스타화, 대형 교회에서는 30초 단위까지 분해한 예배 진행 큐시트, 영상 중계 예배, 대형 찬양 예배팀의 무비판적 모방, 찬양팀과 찬양대(성가대)의 알력, 자기 몰입적 은혜 사모의 폐해(이기적 신앙화) 등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했습니다.
현대 예배가 질적인 발전을 모색하기에 앞서 양적인 부흥을 먼저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 약 30년 동안 질적인 발전을 모색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모로가도 부흥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부흥을 위해 찬양팀을 급조하고, 재정을 투입하였지만, 신학적으로, 우리 교회의 문화에 맞는지 검토하고 연구하고 적용하는 교회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문제점을 인식하는 교회들은 이제서야 좀 있지만, 무엇이 어디무터 잘 못되었는지 모르기에 문제점들만 나열하다가 관계자들이 서로 다투고 반목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큰 교회에서는 예배 기획팀이 구성이 되지만, 예배 신학적인 탐구나 나눔이 있기 보다는 매 주 이루어지는 예배의 큐시트 작성이나, 절기 예배와 특별 예배의 내용을 어떻게 짤 것인지에 대해 담임 목사님의 하명에 따라 준비하는 부서로만 있을 뿐입니다.
올바른 신학의 부재에 대한 문제를 못느끼고 실용주의 관점이 양적인 부흥을 위해 도입 될 때 예배와 교회는 서서히 망가지게 됩니다. 특히 그 안에서 봉사하고 사역하는 예배 사역자들은 점점 더 고갈이 되지만, 문제가 명확하게 무엇인지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지 모르고 탈진하게 됩니다.
교회라는 고유의 정체성, 그에 따른 우리 교회의 정체성, 그 정체성에 맞는 예배 기획을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짚고 연구하지 않으면 황금 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긴 출애굽한 히브리 민족과 같이 되기 쉽습니다.
성공과 양적 부흥이란 유혹에 빠져 예배를 실용주의로 망가뜨리기 쉬운 시대입니다.
© 하이테크 예배 신학 연구소 소장 우한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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