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당신은 예배 소비자인가? 성육신 관점의 창조적 미디어 담당자인가?

지난 회에서는 작은 교회도 예배 기획팀을 만들자고 말씀 드렸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이 드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과거 많은 교회가 접목하고 롤 모델로 삼은 예배들, 교회의 사역 모델들이 지금에 와서 우리 교회에 어떤 유익이나 현상을 만들었는지를 이번 글을 통해 다시 잘 생각해 보신다면 저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예배 소비주의

80년대 후반부터 유행처럼 번진 경배와 찬양의 흐름은 많은 교회 성도와 목회자들을 찬양 예배의 현장으로 견학하게 했고, 각 교회마다 악기와 음향 장비를 들이고, 예배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유익은 작은 교회 각각보다는 그 원천의 교회가 많이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잘하는 그 교회를 추종하고 그대로 베끼려 했으나, 현실은 그 수준을 재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계속 그 교회와 찬양팀이 공급하는 컨텐츠의 소비층이 되어버리고 종속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이런 예배를 시도했으나 잘 안되었을 때 실망한 부류들 중 일부는 그 대형 교회로 옮겼습니다. 결국 자본과 장비와 인력이 충분히 준비되어 높은 수준의 컨텐츠와 예배를 구현한 그 교회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들이 생산한 컨텐츠를 소비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아졌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그 교회였습니다. 소비를 할 수록 소비하는 곳 보다는 공급자가 커지는 일반 상업세계의 원리대로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속성을 알아챈 교회들이 교회 건물과 장비, 악기와 인력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예배는 자본의 논리에 연출된 은혜를 성도들이 맛 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매 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이 잘하는 곳의 예배 인도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에 부응하여 곳곳에서 예배/찬양 세미나와 학교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 세미나에서 논의되고 소개되는 부분들 중에는 자본이 많이 투여된 사역을 기초로 연구된 것들이 제공되고 있어서 각 교회의 현실에 접목하기 어렵고, 부지불식간에 예배 사역과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 예배의 틀이 되는 교회론과 예배 신학보다는 예배 스킬이나 개인적 차원의 예배자 신앙 고취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안의 방향은 어디에 있는가?

계속 이런 경향을 고민하지 않고 따라가야 할까요? 멋지게 예배 드리는 큰 교회로 쏠리고, 작은 교회는 예배가 비교되고 황폐화되는 현상에 그냥 있어야 할까요?

안타까운 이 현실에 레슬리 뉴비긴의 고민과 관점이 보통의 교회와 예배를 위해 필요합니다.

Lesslie Newbigin graphic인도의 선교사로 35년간 활동하다가 은퇴해 1974년 고향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은 고국 영국이 떠날 때와는 달리 선교지가 되었음을 발견합니다. 영국은 다른 종교가 장악을 하고 있었고, 기독교가 몰락하면서 교회에 대한 차가운 멸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교적 관점으로 영국 사회와 교회를 바라보았습니다. 선교라는 것은 특정 선교사가 하는 것이나, 교회가 선교의 주체라는 것이 아니라, 선교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하심이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차원에서 교회를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시는 것을 지속하도록 부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바로 교회가 있는 지역 그 자체가 선교지이며 교회는 그 지역에서 하나님의 화해의 일을 감당하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구약 성전의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만(대 속죄일) 들어갈 수 있었고, 성소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제한 사항과 주의 사항이 많았습니다. 신약 시대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 휘장을 여셔서 우리가 더 이상 성전을 찾아가지 않고 성전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움직이는 성전이 되어 건물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이 필요한 영혼과 현장으로 들어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교는 우리 교회에서 그 지역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선교 전략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 바뀌어 그 지역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바라 보고 하나님 선교의 손길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론과 예배가 필요합니다.(이런 교회를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미디어 담당자가 굳이 이런 부분까지 알아야 하느냐?’라고 물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를 담당하다가 탈진을 경험하신 분들과 오랫동안 미디어를 담당하신 분들께서는 지금 말씀 드린 부분의 가치를 아실 것입니다. 소비주의 예배는 예배 관련 사역자들을 탈진시키고, 인간적인 생각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예배가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장비에 대한 지식과 운용만을 하다가는 방송실에 갇힌 영혼이 된다는 것을… 미디어 사역자 또한 복음의 흐름 안에서 창조적인 예배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이 영혼의 기쁨이 됩니다. 자기가 속한 교회와 지역을 위한 선교적 관점에서 예배를 디자인하는 것은 미디어 사역자의 손에서 제대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수 많은 설명보다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과 음향이 깊은 인사이트를 주며, 실천적 동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미셔널적 관점의 창조적 예배의 인사이트를 품은 미디어 사역자의 활약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예배와 교회,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의 예배는 어디 좋아 보이는 교회와 집회의 외형과 장비, 프로그램을 가져다가 제조하는(produce) 예배가 아니라, 교회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에 하나하나 살아 증거하는 스토리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는 기쁨을 누리는 예배가 되도록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예배-선교라는 것이 따로 독립된 사역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축을 이루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풀어 나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더 이상 유행과 소비주의적인 것에 좌지우지되는 예배가 아니라, 성육신적인 관점에서 지역의 사람들의 영혼까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창조적인 예배 미디어 사역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하이테크 예배 신학 연구소 소장 우한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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