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예배를 드리지만 변화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

약 30년 전 현대 예배가 접목되고 예배자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1992년 최초의 예배자 학교였던 문화선교 주찬양 사역자 학교 1기 출신입니다.
상당히 센세이셔널하고 현대 예배에 관한 종합적인 시각을 처음 전달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예배자 학교를 다시 가 보니 내용은 그 당시에 비해 한 발짝도 전진 못하고 1/3보 만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신학적인 바른 관점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과, 실제의 문제와 환경(Context)에 대한 이해가 없이 명제와 당위(Text)만 강조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 잘 못된 예배의 정의를 바르게

예배자 학교에서 예배의 정의를 영어의 Worship을 들어 설명합니다.
worth(가치)+ship(자격)이라고 해석하면서 “최고의 가치를 받으실 만한 분에게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들으면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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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제와 당위의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는 왜곡되어 적용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고”라고 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 자꾸 외적인 부분에 맞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사역을 선도하는 교회나 단체에서는 최고급의 다양한 악기와 음향 장비를 가지고 프로 뮤지션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교회에서도 장비도, 실력도 최고의 수준을 은근히 요구하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받아 팀웤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재정 상황이 좀 되는 교회에서는 물량과 인력에 투자를 많이 하지만 신앙과 신학적으로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거나 관련 성경 구절만 뽑아 공부하는 초보 수준의 가르침으로 끝내 버립니다.
최고가 아니면 잘못된 것 같고, 최고 수준의 사람들이 우선 대접을 받게 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보인 반응일 뿐입니다.
그것 자체가 예배는 아닙니다.

게다가 이런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제물들이 있는데, 하나님은 그 사람의 형편에 맞춰 요구하셨고, 또 이런 제물은 언약(계약)의 징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최고라고 볼 수 없는 것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구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제물을 정하신 것을 보면 평균적인 수준에 맞춰서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사장들은 타락해 최고의 것을 드리라고 하면서 그 화려한 성전을 짓고 과부의 하루 생활비까지도 털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고 나서 화려한 성전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사흘만에 새로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최고의 제물이 이미 되셨기에 예배에서 최고의 가치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제물되시고 부활하신 것을 기리는 것 자체가 됩니다.

성경은 최고의 것을 드리라는 명제와 당위로 세워진 화려한 성전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몸을 드려 세우신 진정한 성전을 대비해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가치를 드린다는 예배의 정의는 신학적으로 상당한 무리수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Worship이라는 단어에서 바른 예배의 정의를 찾아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Worship이라는 예배의 정의에서 ‘ship’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뜻은 ‘관계’를 뜻합니다.
이것은 사전적 의미로도 나와 있습니다.(한 번 찾아보십시오.) 게다가 최초의 예배(경배)를 드린 부분부터 계속된 성경 인물들의 예배(경배) 상황들을 보면 자신들의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기는 했으나, 예배의 초점이 거기에 있지 않았고 “관계’에 있었습니다. 최고의 것을 드리는 것은 나와 관계를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림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이지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제대로 회복하지 않고서 결과로 보여지는 부분을 강조하게 되면 본질을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정의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가치와 자신의 본질적 존재 가치와 방향성을 확인하고 소통하며 존경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이 부분을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예배를 준비하고, 또 같이 함께하는 사람들과, 또 성도들과 서로 소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본질적 존재가치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수만 번의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자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잘 못 느껴 삶이 변화가 잘 안되고, 공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주객이 전도되면 안됩니다.

 

2. 소모품이 되어가는 예배 방송 사역자를 살려야

예배 사역자들에게 연주를 하거나 음향/영상 장비를 만지고 봉사하는 것 자체가 예배의 행위라고 많이 가르쳐 왔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게 믿고 그렇게 해 왔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과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예배 방송 사역자 분들을 상담을 해 보면 예배 사역은 하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고갈되어버려 힘들어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예배가 화려해 지고 기술적으로 고도화 되며, 교회가 조직회 되면서 예배 사역은 다뤄야 하는 장비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쉽게 방송사고가 날 수도 있고, 빠르고 다양한 변환과 작업을 해야 하기에 쉽게 예배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방송 사역자들을 한낮 직원처럼 대하는 조직화된 중대형 교회 분위기와 ‘시다’처럼 대하는 분위기 역시 예배에 집중하기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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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컨텍스트의 환경에서 텍스트만을 강요한다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방송 사역 행위가 예배 자체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실 저는 그렇게 해 왔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렇지 못한 분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것이 계속 되면서 상처가 쌓여 제도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가 되는 분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써 이런 형편에 계신 분들이 영적인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명제와 당위로만 현실의 문제들을 덮고 넘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명제와 당위는 교회의 체질을 목적 지향과 시스템화를 만들고 있어서 이렇게 목적을 위해 소비되는 사역자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예배 사역자들이 예배와 영적인 공급에 제일 사각지대에 있는 이 환경이 한국 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현대 예배를 드리지만 변화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사역자와 봉사자들이 소비되는 것을 깨닫고 돌아봐 방향과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아무리 명목이 좋아보여도 사람이 소비되고 지쳐 쓰러진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게토화 된 예배에서 벗어나야

그래서 전통 예배로 회귀하자는 주장은 아닙니다. 요점은 우리가 예배의 본질을 잘 못 알고 있었고, 정작 예배의 사역자들이 예배에서 영적인 공급과 돌봄에서 배제되고 일하는 사람으로만 취급 당하고 있는 문제의 본류를 살펴보면 미디어 매체를 열심히 활용하는 현대 예배가 가지는 긍정적인 면 이면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의 예배를 본질의 예배로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의 미디어와 예배 카테고리의 아티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대 기술을 접목한 예배에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미디어의 긍정적인 속성 외에 미디어의 부정적인 속성과 활용에 대해 교회는 전혀 연구를 하지 않고 사용해 왔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미디어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예배가 이 세상 속에 이미 나타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와 나라를 보지 못해 세상과 단절하고 게토화 하는 모습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상 미디어와 안락한 예배 환경은 교회와 설교를 쇼핑하고 은혜를 자신이 받는 것에 방점을 두고 예배를 소비하는 종교 소비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관에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와 감동하고 만족해 하며 일주일을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고통과 손해를 감수하며 수고와 애를 쓰며 예수님을 따르는 실천의 손과 발은 점점 퇴화되어 버립니다.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입니다. 핫 미디어는 일방통행으로 사용하는 것이고, 쿨 미디어는 상호소통과 사유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핫 미디어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고 쿨 미디어로 사용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세상(파송 받은 지역)과 하나님과의 소통의 장이 되고, 그 장 안에서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 어떻게 실제적으로 세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를 아름답게 수행할까 사유하게 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목사 혼자만의 생각으로 예배를 기획하기 보다는, 바른 예배 신학을 공유하고 예배 담당자들과 성도들과 함께 같이 사유하고 토론하는 가운데 차근차근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희 연구소가 존재하고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 하이테크 예배 신학 연구소 소장 우한별 목사

2018 개편 최종 IHWT L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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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사역자 교육 음향 점검/측정/조정/시공에 관련된 컨설팅/악기문의 등 010-6253-0415 director@ihtw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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